에세이

결심보다 행동을: 헬스장을 나오며 든 생각

jrpark91 2025. 2. 16. 18:03

1. 

퇴근 후 헬스장에 오면 무념무상으로 운동을 하게 된다. 몸무게를 늘리고 싶기에 주로 무거운 바벨을 든다. 세트 간 휴식 시간에는 힐끗힐끗 몸좋은 사람들을 구경한다. 그러다 거울 속에서 눈을 마주치면 민망한 마음에 서둘러 세트를 시작한다. 저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오겠지만 이곳에는 왠지 모를 활기가 있다. 점점 들 수 있는 무게가 늘어가면서 성취감도 느낀다. 그래서 헬스장에 오는 것을 좋아한다.

2. 

퇴근 후 헬스장을 쉽사리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단 너무 피곤하다. 지금 운동을 가면 다음날 몸살이 날 거 같은 확신이 들 때도 있다. 회사에서 머리를 너무 많이 써 중추신경계가 모두 무너진 날이 그렇다. 내가 다니는 헬스장은 저녁 11시까지인데 문 닫을 시간에 가까워질수록 고민이 커진다. 이걸 가 말아? 고민 끝에 헬스장에 가기로 결심을 했어도 몸은 움직이지 않는다. 지금 억지로 가면 몸이 상하는 게 아닐까? 가봤자 얼마 못하잖아? 침대에 누워서 별생각을 다 한다. 안 간다고 딱 결정하면 덜 괴로우련만 그러지도 못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괴로워진다. 내가 하는 유일한 움직임은 손가락으로 핸드폰을 스크롤 하는 것뿐이다. 제대로 쉬지도, 운동하지도 못하고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고통스럽다.

마음의 고통이 몸의 피곤함을 넘어서는 순간 내 몸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주섬주섬 운동복을 입고 문밖으로 향한다. 지금 가봤자 40분도 못 하겠지만 말이다. 집 현관문을 열고 찬 바람을 쐬는 순간 피곤함은 상쾌함으로 바뀐다. 헬스장으로 가는 길, 기분이 참으로 좋다. 문 닫을 시간에 온 게 민망하기는 하여 빠르게 옷을 갈아입고 운동을 시작한다. 남은 40분은 생각보다 길다. 유산소는 못 했지만, 하체를 강도 높게 한다. 스쿼트 무게는 늘지 않았지만, 계단을 오를 때 다리가 휘청거리는 걸 보니 또 기분이 좋다. 집에 도착하여 시계를 본다. 집에서 나온 지 겨우 40분. 짧은 시간에 내가 살아있음을 느꼈다. 침대에 누워 갈지 말지 고민하면 그냥 없어졌을 시간이었다.

3. 

어쩌면 결심보다 행동이 중요하다. 침대에 누워 다음날 몸살을 걱정하던 순간은 고통일 뿐이었다. 헬스장에서 무념무상으로 바벨을 들 듯 생각 없이 집 밖을 나가면 된다. 몸이 피곤해서 다음날 진짜로 몸살에 걸렸더라면 그것 또한 경험이다. 이 정도 피곤하면 포기할 기준점이 될 것이다. 최근 개발 사이드 프로젝트를 시작했을때의 고민이 떠오른다. 어떤 기술과 아키텍처로 만들지 고민하느라 시작이 늦어졌다. 차라리 직감적으로 마음에 드는 기술을 선택하고 빠르게 진행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겠다. 만들다 보면 이 기술의 장단점도 보이고 내가 부족한 게 뭔지 알았을지도. 어차피 흐를 시간이라면 고민보다는 뭐라도 해보는게 좋지 않을까?

사실 생각해 보면 인생의 많은 고민이 정량적 계산을 통해 답을 낼 수 없다. 결심 이후 행동이 필요한 순간들이 반드시 온다. 당장 눈앞의 일들도 그런데 결혼, 이직, 커리어, 이별 등 인생 중대사 선택은 얼마나 더 앞 길을 알 수 없을까. 앞으로 고민해야 할 일들이 떠오른다. 결심이 먼저 필요하지만, 결심만 하고 싶지는 않다. 결심 이후에 빠르게 행동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운동 후 차오른 아드레날린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헬스장에서 나올 때면 그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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